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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한국경제] '부패 곰팡이' 양지로 드러내라 / 이호선(법학부) 교수

  • 작성자 박차현
  • 작성일 14.07.03
  • 조회수 5852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방문을 위해 지난 4일 벨기에 브뤼셀을 찾은 날은 공교롭게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첫째 날과 맞물려 있었다.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숙소로 이르는 모든 길이 통제돼 근처 골목에서 내려 호텔까지 걸어가야 했다. 그런데 자기 잘못도 아닌데 택시 기사가 미안하다면서 쪽지를 꺼내더니 뭔가를 한참 써서 줬다. 출발지와 도착지, 요금을 적은 일종의 계산서였다.

이틀 후 브뤼셀 공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도 그런 쪽지를 받았다. 손님의 요청이 없더라도 계산서를 작성해 내어주는 일은 법적인 의무 같았다. 우리로 치면 현금영수증 발급 의무 같은 것으로 보였다. 3~4분 기다려야 하는 승객 입장에서는 번거로울 수도 있는 이 절차를 거치면서 이 작은 도시가 스물세 개의 언어가 소통되는 국제도시로서 원활하게 작동하는 비결 하나를 엿볼 수 있었다. 그것은 ‘투명성’이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오래된 적폐 일소, 그것도 국가개조 수준에서의 부패 구조 청산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다. 2013년 국제투명성기구에 따르면 한국의 공공부문 부패인식지수는 55다. 국가별 순위는 세계 46위로 2012년보다 한 단계 더 떨어졌다.

공동체의 몰락과 국가 위기는 외부적 요인들의 작용보다 내부적 환경에 기인하는 바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사회 구성원들의 공동체에 대한 신뢰, 규범에 대한 존중, 가치에 대한 경의는 내부 환경을 건강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요소들이다. 이런 것을 좀먹는 대표적인 적은 부패와 불공정이다. 부패와 불공정이 만연한 사회는 구성원의 자발적 승복 기제를 말살하고, 시민정신의 토양을 황폐하게 한다. 바깥 세계에서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각들은 지금의 한국 사회가 부패와 불공정을 효과적으로 규율하는 데 미흡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부패 청산의 기본 원칙 중 하나는 투명성의 확보다. 부패라는 곰팡이를 공중의 감시라는 양지에 가능한 한 노출시켜야만 번식을 막을 수 있다.

2011년부터 EU 집행위와 유럽의회는 공동으로 ‘투명성 등록처’를 신설해 EU의 입법 정책에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모든 자연인과 법인 등에 대한 자발적 등록을 유도하고 있다. 등록대상은 상업적 로비스트에서부터 로펌, 시민단체, 싱크탱크 등 영리, 비영리를 불문하며, 관련 재정내역도 공개토록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말 기준 투명성 등록처에 등록한 자연인과 법인의 숫자는 5952곳에 이르고 있다.

물론 투명성이 부패 방지 수단의 전부는 아니다. 공직 청렴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부패의 일상화를 추인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래서 EU의 직원 복무규정은 공무원으로 하여금 퇴직 후에도 일정한 지위에 취임하거나 이익을 받음에 염결성(廉潔性)을 유지하고 신중히 처신할 의무를 부담시키고 있다. 또 퇴직 후 2년간 취업 시에는 영리를 불문하고 종전 소속 기관에 고지해 승인을 얻도록 하고 있다. 의회의 보좌관, 심지어 인턴들도 채용하기 위해서는 당해 의원에게 알려서 승낙을 받도록 하고 있다.
 

퇴직 후 취업 신고 대상자에 지위의 고하가 없다는 점에서, 일정 직위 이상으로 취업 제한 대상자를 정해놓고, 그것도 직무 관련성을 피할 수 있는 다양한 편법적 우회로를 놔두고 있는 한국의 법제와는 확연히 대비된다. 이에 더해 모든 정책 입안이나 의사결정에 대한 청탁은 반드시 서면으로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엔 부정한 청탁으로 간주하는 접근 방식도 고려할 수 있다.

EU라는 준국가조직이 민주성의 결핍이라는 끊임없는 비판 속에서도 적어도 공직 부패에 관한 한 스캔들 없이 굴러올 수 있었던 동인(動因) 하나를 브뤼셀의 택시 안에서 다시 생각할 수 있었다.

원문보기 :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4062914111&intyp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