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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아시아경제][충무로에서]큰 기업들이 가벼워질 때/김도현(경영학전공) 부교수

  • 작성자 김동호
  • 작성일 13.07.26
  • 조회수 9244

새로운 혁신을 만들어 내는 데 큰 기업이 유리한가 아니면 작은 기업이 유리한가 하는 논쟁이 있습니다. 슘페터는 혁신과 경제성장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여유자원이 많은 대기업이 혁신을 이끄는 데 유리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성장사를 돌아보면 이런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자원집중 성장이 핵심동력이기는 했지만 대기업들이 공정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킨 점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반대로, 작은 기업들이야말로 혁신의 주역이라는 주장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최근의 기업 역사가 초기 창업기업들의 영웅담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점이 이런 의견에 힘을 실어 줍니다. 애플이 커다란 성공을 누리고 있을 때, 스티브 잡스는 다른 어떤 경쟁자보다도 지금 창고에서 일을 꾸미고 있는 젊은 친구들이 가장 두렵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뛰어난 인력과 자금을 가진 대기업들이 왜 이런 '어린아이'들의 도전에 힘없이 무너지고 마는지는 어려운 질문입니다. 대기업들은 성공한 창업기업의 비결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창업을 준비하다 보면 정교한 사업계획을 작성해야 한다는 조언을 많이 듣습니다. "네가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너는 다른 사람의 계획의 일부가 된다"라는 경구도 있지요. 남보다 더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시장조사와 생산계획을 두 번 세 번 점검하면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 일반적 믿음입니다. 하지만 최근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세상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 사업계획이 잘 실현되지 않는다는 거지요.

최근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린 한 기사는 권투선수 타이슨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계획을 세운다. 입에 제대로 한 방 주먹을 맞기 전까지는 말이다." 사업 첫날, 사업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걸 깨닫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현명한 창업자들은 사업계획에 너무 집착하거나 교조적으로 따르지 않습니다. 대신 사업을 시작하면서 고객과 협력자들로부터 얻는 정보로 사업모델을 계속 바꿔 나갑니다. 이처럼 정교한 사업계획이라기보다는 사업에 대한 가설을 갖고 빠르게 시작하는 창업 방식을 '가벼운 창업(lean startup)'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최근 한 소셜커머스 업체 임원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이제 더 이상 고객 세분화와 시장조사 같은 것을 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여자용 제품을 남자가 사거나, 20대를 겨냥한 상품을 40대가 사는 경우가 너무 흔하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그 회사는 제품을 우선 올려 보고 초기에 어떤 사람들이 구입하는지 알아본 다음 거기에 맞도록 마케팅 방안을 재빨리 설정한다는 것이지요. 가벼운 창업정신과 맞아떨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해 보면 대기업 경영진들도 상당한 공감을 표시합니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면서 기존의 시장조사와 제품, 사업개발 과정이 잘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대기업에서는 새로운 제품이나 사업을 출범시킬 때 내부수익률이나 순현가 같은 의사결정 기준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사업을 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기준에 맞추기 위해 장기간의 사업계획을 작성하고 이걸 조직 내에서 설득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대기업들은 혁신적인 새로운 사업보다는 비교적 예측 가능한 기존의 사업을 조금씩 바꾸는 데서 멈추곤 합니다. 우리나라 경제적 자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기업들이 역량의 아주 일부쯤은 '수익성은 잘 예측할 수 없지만 좀 재미있어 보이는' 가벼운 사업을 시도해 보면 우리 경제는 어떨까 하고 '가볍게' 생각해 봅니다.

원문보기 :http://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30725110523468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