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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머니투데이]"제조업·공학·R&D 대대적 투자 없으면 나라 미래 없어"

  • 작성자 조수영
  • 작성일 13.07.31
  • 조회수 8509

국민대학교는 자랑스런 역사를 지니고 있다. 1946년 해공 신익희 선생을 중심으로 상해 임시정부 요인들이 세운, 광복후 최초의 민족사학이다. 1959년 성곡 김성곤 선생이 인수한 뒤로는 공대 신설, 대학원 인가 등 종합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며 부흥을 이뤘다. 성곡 선생은 쌍용그룹의 창업주이자 언론·정치계의 거목으로, 한국 현대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다. 이런 역사와 전통, 앞선 투자를 발판으로 국민대는 1990년대 이후 특성화에 성공, 자동차·디자인·건축 등 몇몇 분야에서는 전국 '톱' 수준의 인재들을 배출해 왔다.

하지만 국민대는 지난해 큰 시련을 겪었다. 정부의 '재정지원 제한대학'에 지정된 것. 대학 안팎 구성원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자존심에도 깊은 상처를 입었다. 유지수 신임 총장(61)이 사태 수습에 나섰다. 총장이 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누군가 책임질 사람이 필요했다. 유 총장은 "내년에도 재정지원 제한대학에 선정되면 책임지고 사표를 제출하겠다"고 선언했다.

폭풍같은 시간을 보내고 국민대는 다시 평가대 위에 서 있다. 교육부는 다음달 말 '재정지원 제한대학'을 발표할 예정이다. 1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에 제대로 준비를 할 수 있었을까 일각에서는 의구심을 갖는다. 하지만 지난 19일 인터뷰를 위해 국민대를 찾았을 때 유 총장의 얼굴에 초조한 기색은 없었다. 배석한 홍보실장이 "최악의 지표로 시뮬레이션을 해봐도 재정지원 제한대학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고 살짝 귀띔을 해줬다. 사실 국민대의 경우 형식적인 지표관리에 잠시 소홀했을 뿐 본질적인 역량 면에서 보면 잠재력이 큰 대학이라는 게 대학가의 일반적인 평가다.

제10대 국민대 총장을 맡아 1년 반 숨가쁘게 달려온 유 총장을 만나 대학 환경의 변화, 향후 대학이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해 의견을 들어봤다.

-대학을 둘러싼 환경이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평가후 상벌이 없었는데 지금은 교육부가 상벌 권한을 행사해서 엄청난 영향력이 있습니다. 교육부가 만드는 정책과 평가에 맞춰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평가·취업과 관련한 역량을 분석해서 키워야 합니다. 국민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우선순위를 잘 정해야 합니다. 수도권 대학은 거의 다 70%가 역량이 비슷하다고 보고 있어요. 전략을 어떻게 짜고, 자원을 어떻게 배분하느냐에 따라 역량이 달라질 것으로 봅니다.

-국민대는 잘 돼 가고 있다고 보십니까.
▶국민대는 좋은 역량을 갖추고 있습니다. 교수들이 성실하고, 특성화된 분야도 있고, 새롭게 구성한 장래성 있는 분야도 있어서 인력조합이 잘 돼 있어요. 예술대 이런 쪽은 취업은 불리하지만 지역사회 봉사라는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교육부에서 그런 쪽을 평가해줬으면 좋겠어요.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아이들도 중요합니다. 그런 부분을 고려해서 인문사회 분야도 교수충원 등 가급적 투자를 많이 하려 하고 있어요. 기업과 대학은 본질적으로 다르니까요.

-정부의 대학평가에 대해 총장님들이 불만이 많은 것 같습니다.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 국민들이 낸 세금이 효율적으로 쓰이고 있나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정치적, 인기영합적 이유로 예산을 쓰면 분명히 낭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 걸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않아야 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반값등록금'도 정치적 논리로 진행된 측면이 강하지요.
▶우리 인구가 서비스업으로 먹고 살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2000만명 미만은 서비스업으로 가능해요. 하지만 5000만명 인구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제조업을 갖고 갈 수밖에 없어요. 제조업의 성공은 R&D에서 승부가 납니다. 싼값으로 고급인력을 배출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대학에 대한 투자를 줄이면서 어떻게 R&D를 할 수 있고, 고급인력을 배출할 수 있겠어요. R&D 투자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10년 뒤, 20년 뒤 우리의 모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새로운 기계와 공간, 소프트웨어가 들어와줘야 합니다. 학생들이 교실이 아니라 랩에 가서 시제품을 만들어보고 대회에 나갈 제품을 만들어보는 시대가 됐어요. 그래야 창의적인 인재가 나옵니다. 대학이 그런 걸 하려면 투자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3조원에 달하는 국가장학금은 고부부가치 인재 양성과는 별로 상관이 없어요. 학부모와 대기업은 비용이 줄어드니까 좋을 겁니다. 어떻게 보면 세금을 걷어서 대기업을 도와주고 있는 모양새지요. 그래도 반값등록금은 계속 갈 겁니다. 제가 말하는 건 바다에 조약돌을 던지는 것과 같겠지요. 그래도 대학총장, 학자의 양심을 걸고 이 말은 꼭 하고 싶었어요.

-경영학을 전공했는데 한국자동차산업학회 명예회장도 맡고 있습니다. 어떤 인연인지요.
▶경영학 중에서도 생산관리 쪽이 주 전공입니다. 1980년대 미국에서 경영학을 공부할 때 일본의 자동차회사 경영방식이 큰 화제였어요. 미국 메이저 업체들이 일본 업체들 때문에 몰락하는데 도대체 일본이 경영을 어떻게 하길래 그게 가능한가를 많이 공부했습니다. 귀국해서도 그런 부분을 많이 얘기했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국내 자동차 관련 업체들과 가까워졌지요.

-국내 자동차산업이 많이 발전했는데 앞으로도 유망할까요.
▶지금부터의 승부는 결국 R&D(연구개발)라고 봅니다. 폭스바겐이 세계 최고 자동차그룹인데, 머리로 원가절감을 이룹니다. 개발기간, 개발비 단축을 시스템으로 만들고 있지요. 반면에 우리는 몸으로 원가절감을 해왔습니다. 적은 공대 출신 인원들이 밤을 새워서 연구하고 있지요. 몸으로 때우는 겁니다. 우리도 결국 독일식으로 가야 합니다. 엔지니어링 쪽에 엄청난 투자를 해야 합니다. 몸이 아닌, 머리로 경쟁력을 키워야지요.

그런 측면에서 대학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림이 그려집니다. 융합교육을 많이 얘기하는데 많은 융합이 있을 수 있어요. 대학민국의 경쟁력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보면 그 출발이 융합교육입니다. 요즘 스마트폰 기술에는 '문사철(文史哲)'이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IT에 인문학이 접목된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겁니다. 모방이 쉬워요. 남들이 금방 따라와 버립니다.

반짝반짝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그런 걸로는 국가적으로 승부를 못 겁니다. 전통적인 공학이 베이스가 되고 거기에다 IT와 디자인, 문사철이 결합되면 선진국을 앞서갈 수 있어요. 공학을 무시하면 오래 못 갑니다. 다행히 요즘 고등학생들이 예전에 비해 공학 쪽에 관심이 많다고 해요.

IT 분야에서는 이공계를 뽑으려 해도 없어서 못 뽑기 때문에 인문사회 분야 인력을 뽑아서 교육을 시킵니다. 그런데 공학은 그것마저도 안 돼요. 그래서 공학이 모방이 불가능하다고 얘기하는 겁니다. 1~2년 교육시켜서 되는 게 아니니까요.

-이번에 신설한 자동차융합대학도 그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인지요.
▶IT 인력들이 공학 분야를 대체하기에는 한계가 있어요. 예를 들어 자동차의 조향장치, 제동장치에 대한 기본구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떻게 IT 기술을 접목할 수 있겠습니까. 기업에서는 공학, 구조, 역학, 소재 등을 70% 갖추고, 나머지 30%는 IT, 소프트웨어를 공부한 인력을 배출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좀 다르게 가고자 하는 거지요.

자동차학과는 대한민국에서 국민대가 가장 먼저 만들었어요. 그런데 이번에 또 새로 별도의 단과대학을 만들었습니다. 학과로 하면 융합교육으로 가야 하는데 기존 과에서 커리큘럼을 바꾸려고 하면 상당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판을 새로 짜자 해서 만든 거지요. 학과 정원 문제가 걸려 있으니까 엄청난 반발이 있었지요. 그래도 국민대가 나갈 길이 이게 맞다면 욕 먹을 각오를 하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욕을 많이 먹고 있어요.(웃음)

-그래도 종합대학으로서 다른 학문 분야에도 신경을 써야 할텐데요.
▶동의합니다. 교육기관은 100% 경쟁논리로 갈 수는 없어요. 문학을 하고 싶고, 봉사단체에 가고 싶은 수요을 충족해야 합니다. 다만, 자원의 배분을 잘 생각해야겠지요. n분의 1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국민대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부분에 조금만 더 주자는 겁니다.

원문보기 : http://www.mt.co.kr/view/mtview.php?type=1&no=2013073012432239249&outlink=1

출처 : 머니투데이 기사보도 2013.07.31 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