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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불복하는 사회/유지수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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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미국 연방정부의 ‘셧다운’(일부 폐쇄)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존 베이너 하원의장 간 한판 승부 결과였다. 공화당 소속 베이너 의장은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제도(오바마케어)가 결국 미국 재정을 파탄으로 몰 것이라고 보고 재정지출을 막으려고 한 것이 발단이 됐다. 그러나 베이너 의장은 국가부도라는 절벽 앞에서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그는 “우리는 잘 싸웠다. 그러나 지고 말았다”고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했다.
정치인이 공공연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것은 흔치 않다. 특히 깨끗한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는 정치인이 토를 달지 않고 패배를 인정할 때는 신선한 충격을 준다. 물론 미국은 개척시대부터 뒤에서 총을 쏘는 것은 비열한 짓으로 여기는 정서가 있다. 유럽의 기사도 정신이 미국인 정서에 깔려 있는 것 같다. 경기 결과를 수용하는 정신이다. 베이너 의장도 이런 미국인 정서를 이해한 치밀한 정치인의 표 계산에 의거한 패배 인정일 것이다. 대부분의 정치인은 국적을 막론하고 표 계산이 행위 결정의 기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하는 정치인의 모습이 부럽다. 승리는 달콤한 꿀같이 넘기기 쉽지만 패배는 넘기기 어려운 쓰디 쓴 약 같기 때문이다.
패배를 승복하는 문화가 정착됐으면 한다. 최근에는 승복이라는 단어가 귀하게 느껴진다. 정치 분야뿐만이 아니다. 검찰도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정의를 위하는 사람같이 말을 하지만 내용을 보면 자신의 편견 탓에 불복하고 있다. 일부 정치인은 국가 질서를 흔들고, 몇몇 검찰간부는 조직의 위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대한민국은 지금 ‘불복국가’가 되고 있다. 정치와 검찰을 넘어 온 국민이 승복을 못하는 것 같다. 비행기에서는 승무원을 상대로 억지를 부리는 사람이 늘고 있다. 다른 사람의 불편은 안중에도 없다.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교육을 포기했다. 벌을 줬다가는 학부모에게 멱살을 잡히는 판이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기존 질서가 파괴되면서 예술이 꽃을 활짝 피웠으나 사회에는 대단한 혼란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도 그 시대에는 예술문화의 꽃이라도 피었으나 우리의 혼란은 결실 없는 사회 불안정뿐이다. 아마도 사회학자는 이런 불복의 시대를 여러 각도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정의와 신뢰 부족을 지적할지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책임을 묻는 제도가 없다는 것이 한국 사회의 문제다. 정치인은 국정감사에서 호통을 치고 말면 그뿐이다. 세종시에 국감을 위해 내려온 국회의원이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를 해도 그만이다. 부모가 달려와 학생들 앞에서 선생님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려도 그만이다. 비행기 안에서 행패를 부려도 책임지울 법적 근거도 없다. 블랙컨슈머가 은행과 기업의 직원을 공포로 몰아넣는 사회가 된 지 오래다.
외국에서 범죄가 감소하는 이유를 연구분석한 적이 있다. 진보주의자는 범죄자의 재범 방지를 위한 재교육과 범죄예방을 위한 복지시설 확대 등을 주장했다. 반면 강경파들은 범죄율 감소를 위해서는 감옥을 늘려 범죄자를 사회에서 격리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근자의 연구결과는 놀랍다. 폐쇄회로TV(CCTV)와 같은 보안시설 덕분에 범죄자가 잡힐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연구결과가 통계분석으로 밝혀진 것이다. 결국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에게 철저히 책임을 묻는 사회가 되면 사회 안정은 정착되기 마련이다.
우리의 문제는 과거 상부에 집중됐던 권력이 하부로 이동하면서 발생하는 것이다. 권력의 하부 이동이 민주화의 조건이라면 필요하다. 그러나 권력 이동은 됐으나 책임 이동은 이뤄지지 않았다. 책임은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사회가 돼 가고 있다. 패배를 인정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가를 혼란에 빠뜨려도 그만이라는 무책임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 국민도 자성해야 한다. 사회 곳곳에서 ‘떼법’이 모든 법에 우선시돼서는 안된다. 책임을 지는 국민이 돼야 한다. 그게 위대한 국가가 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원문보기 :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3111813591
출처 : 한국경제 기사보도 2013.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