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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과거사 반성 미흡했지만 수교 … 박 대통령, 아버지 결단 계승해야" /이원덕(일본학전공) 교수
“과거사 문제도 사안별로 성격을 구분해 전략적 국익의 관점에서 냉정하게 대응해야 한다. 예컨대 위안부 문제는 우리가 일본에 이기는 게임이다. 그러나 징용자 문제는 다르다. 징용자는 이미 해결됐다는 정부의 2005년 입장과 징용자의 배상권을 인정한 2012년 5월의 대법원 판결에서 서로 상충하는 부분이 양립할 수 있도록 정부가 묘안을 적극 찾아야 한다.”
한·일 국교정상화 연구로 일본 도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원덕(51)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올해 3월부터 1년 일정으로 일본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에서 방문 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일시 귀국한 그를 중앙일보가 만나 악화한 한·일 관계의 실상, 일본 내부의 분위기, 바람직한 해법 등에 대해 들었다.
이어도가 일본 방공식별구역(JADIZ)에 포함돼 있었는데도 일본이 협상을 줄곧 거부해온 데 대해 그는 e메일로 진행한 추가 인터뷰에서 “그동안 이어도는 잠재적으로 중국과의 갈등 사안이어서 이어도와 일본의 방공식별구역 문제가 민감한 쟁점이 되지 못했다. 문제가 불거진 이상 재조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다만 “일본에 불순한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이 지지하지 않고 우리가 절대 용인할 수 없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독도까지 항공식별구역을 확대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 미국이 중국의 항공식별구역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한·미·중·일을 둘러싼 정세가 복잡해졌는데.
“센카쿠(댜오위다오) 영유권 문제로 중국과 대치해온 일본은 이번 조치를 중국의 현상변경을 위한 도발로 간주한다. 미국과 공조해 강력하게 대처하고 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설치와 집단적 자위권 행사 정당화 등 강성 안보정책을 추진해온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이번 사태로 오히려 탄력을 받고 있다. 중·일 갈등이 첨예해질수록 한국의 외교안보 정책은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한·중·일 정상회담의 조기 개최를 요구해 외교적 이니셔티브를 발휘해야 한다. 3국 정상회담을 반일 감정과 과거사 때문에 못한다면 이는 우리 외교의 노력 부족이다.”
-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한·일 정상회담을 해도 좋은 소식이 안 나오면 관계가 더 악화할 수 있다’고 부정적 시각을 보였는데.
“2011년 12월 교토(京都) 정상회담을 자꾸 의식하는 듯하다. 당시 이명박-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회담은 위안부 문제로 맞서 안 한 것만 못한 회담이었다는 인식이 있다. 불편했던 관계도 통상적으로 정상회담을 통해서 복원되는데, 지금은 일본 지도자의 역사인식 문제에다 강제징용자 문제까지 부각돼 정상이 만나도 더 불편해질 것이라고 보는 듯하다. 대통령이 그런 강한 발언을 하니 외교 당국자들이 일본 인사를 만나는 것도 꺼린다. 역사 문제에서 단호하게 원칙을 지켜야 하겠지만 대일 관계 전체가 일그러지는 것은 국익에 손실이다.”
-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과거사가 중요하지만 과거사 문제로 대일 관계의 균형이 상실되면 국익과 미래 통일 전략에 부담이 된다. 정상회담이 어렵다면 정상회담 없는 한·일 관계와 대일 외교라도 먼저 복원해야 한다. 정상회담과 대일 외교를 분리해 접근하는 것이 좋다.”
- 극적으로 한·일 정상회담을 한다면.
“첫째, 아베 총리의 역사 인식 일탈을 정리하는 선언을 해야 한다. 둘째, 위안부와 징용자 문제가 현안이니 합의가 필요하다. 셋째, 과거가 아닌 미래 협력을 논의해야 한다. 우리 정부가 입장을 먼저 정리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만나면 싸움만 할 것이다. 우리 정부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른 약속을 지킨다고 선언하고 당시 미흡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일본이 마무리하라고 압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교수는 현재 한·일 관계의 최대 현안으로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자 임금 문제를 꼽았지만 두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달랐다.
- 같은 과거사 문제인데 위안부와 징용자 문제를 다르게 접근하나.
“두 문제의 뿌리는 하나다. 65년 청구권 협정의 해석과 적용이 쟁점이다. 우리 정부의 해석은 2005년 관계 부처 차관급이 참석한 가운데 민관합동위원회에서 정리했다. 즉 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법적 책임이 있으며 청구권 협정으로 해결이 안 됐다는 것이다. 반면 강제징용자 문제는 청구권 협정으로 일단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간주하고 만약 미흡한 부분이 있으면 우리 국내 조치로 해결한다는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 때 한·일 외교문서를 전격 공개했는데 당시 전문가들이 강제징용자 미지불 임금 문제는 65년에 해결됐다고 해석했다. 이런 정부 입장은 지켜져야 한다. 국가 신인도와 위상을 감안하면 상황이 바뀌었다고 조변석개할 수는 없다.”
- 강제징용에 관한 2012년 5월 대법원 판결 이후 한·일 관계가 더 꼬였다는 시각이 있는데.
“대법원은 청구권 협정 당시 우리 정부가 견지한 대로 일제 식민지 통치가 불법이었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90년대 일본 정부의 인식(청구권 협정에 의해 소멸된 것은 외교적 보호권이지 개인의 배상 청구권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것)을 원용했다. 법치주의상 일부 문제가 있어도 대법원의 판결 정신을 존중하면서 한국 정부 신인도를 떨어뜨리지 않는 묘안을 정부가 고민해야 한다.”
- 강제징용자 관련 논란의 진실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살아 돌아왔다고 보상금을 주지는 않는데 강제 징용자에게 보상하면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그런데도 2005년 우리 정부가 3000억원의 예산이 수반되는 입법조치로 강제징용자 임금 미지급 사례에 대해 지원금을 지급해 오고 있다. 청구권 자금 형식으로 정부가 미리 대신 받아 징용자 명부를 대조해 1인당 ‘3000만원+알파’를 지급한 것으로 안다. 그런데 일부 생존자와 유가족이 청구권 협정에서 임금 문제가 끝나지 않았다며 뒤늦게 일본 법원에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고, 한국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일제 식민지 통치의 불법성을 인정한 대법원의 판결 정신은 높이 사야겠지만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나 기업에 강제징용자 미지불 임금을 떠넘기는 것은 일본 측에 이중으로 부담을 요구하는 셈이 된다.”
- 법원 판결이 강제 집행되면.
“일본 기업들이 빈 조약법 위반이나 한·일 투자협정 위반이라며 소송을 제기하면 우리가 질 공산이 매우 크다.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면 우리가 국제적 망신을 당할 수 있다. 국제법 학자들은 일본이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대법원 판결이 끝까지 관철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결국 65년 조약을 파기하라는 여론이 제기된다면 정부 신인도에 큰 문제가 생기게 된다.”
실제로 일본 게이단롄(經團聯) 등 경제 3단체는 6일 우리 법원의 판결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65년 청구권 협정에 따라 개별 기업의 배상문제는 이미 해결됐다. 이 문제가 일본 기업의 한국 투자나 비즈니스에 장애가 되고 양국 경제 관계를 훼손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 해법은 없나.
“법리 해석상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대법원 판결은 최종적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 다만 대법원의 최근 판결과 우리 정부의 2005년 입장 중에서 양자택일로 간다면 문제가 엉클어지는 만큼 양립시킬 방안을 찾아야 한다. 분명한 것은 대법원 결정으로 우리가 일본에 승리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문제는 외교부 차원이 아니라 청와대나 총리실에서 전담팀(TF)을 만들어서 범정부 차원에서 원칙을 정해 처리해야 한다. 우리 정부나 (청구권 자금으로 설립된) 포스코 같은 기업들이 문제의 본질이 뻔히 보이는데도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적극 나서서 기금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에 공감한 일본 기업과 정부가 기금에 참여하면 더 아름다운 모양새가 될 것이다.”
이 교수는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주변국의 강제 노동자들에 대해 법적 처리가 아닌 ‘기억·책임·미래 재단’이란 기금 방식으로 해결했던 전례가 있다고 소개했다.
-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나서야 하나.
“이 문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박근혜 현 대통령에게 넘긴 유산이다. 박정희 정권 때도 일본은 지금처럼 과거사 반성을 제대로 안 했지만 일본과의 관계 개선 결단을 내렸다. 안보도 지키고 경제도 살린 차선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여전히 일본은 과거사를 반성 안 하지만 긍정적인 유산은 계승해 실용적이고 전략적인 외교를 해야 한다.”
- 집단적 자위권 문제는 어떻게 다뤄야 할까.
“독도 영유권이나 과거사 문제를 다루는 틀에서 안전보장 문제를 보면 안 된다. 분리해서 봐야 한다. 미·일 동맹 차원에서 부담을 분담하려는 것이고, 중·일 세력 싸움과 북핵 위협 대응에 관한 문제다. 일본이 한반도에 들어와 작전할 그런 상황은 아니다. 우리 안보 전략에 불리한 것만은 아니므로 일본에 요구할 것은 하고 합의도 가능하다.”
- 일본에서는 한국을 어떻게 보고 있나.
“우익을 중심으로 일본은 한국이 ‘작은 중국(Small China)’이 되고 있다고 본다. 중국에 달라붙어 일본을 공격하는 얄미운 국가라고 인식한다. 과거 일본에서 한국 호감도를 조사하면 약 60%가 좋아한다고 답했는데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30% 이하로 떨어졌다. 한국을 바라보는 싸늘한 시선이 느껴진다. 일본 외무성 일각에서는 한·일보다 어쩌면 중·일 관계 정상화가 더 쉬울 수 있고, 일본이 중국과 관계 개선하면 한국이 일본에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란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원문보기 : http://joongang.joins.com/article/aid/2013/11/30/12865009.html?cloc=olink|article|default
출처 : 중앙일보 기사보도 2013.11.30 0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