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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기고] 조세피난처에 대한 誤解 / 안경봉 (법학부) 교수

  • 작성자 조영문
  • 작성일 14.01.08
  • 조회수 8132

최근 국내에서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케이만 군도, 홍콩 등에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거나 계좌를 갖고 있는 명단이 공개돼 화제가 됐다. 또 일부 재벌기업이 특수목적법인을 세금 탈루의 루트로 활용한 사실이 검찰 수사로 드러나 조세피난처(tax haven)에 대한 관심이 크다. 이처럼 과세 당국과 수사기관이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역외 탈세를 뿌리 뽑겠다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 의미 있는 판결이 나왔다.

전형적인 조세피난처인 말레이시아 라부안에 설립된 법인을 이용한 우회거래가 문제 돼 탈세로 기소된 소위 '벤처왕 사건'에 대하여 최근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조세피난처 법인을 이용한 것만으로는 조세 회피 행위라 하여 자회사인 내국법인이 주식을 양도한 것이라 보기 어렵고 조세포탈죄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판결을 선고했다.

조세피난처는 본래 무세율 국가 혹은 저세율 국가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버뮤다, 말레이시아 라부안, 버진아일랜드 등이 전형적인 조세피난처로 거론되지만 홍콩, 미국 델라웨어 등도 조세피난처로 분류되기도 한다. 이 지역들은 조세 부담이 적을 뿐 아니라 금융과 투자 인프라가 발달하고 각종 규제가 적기 때문에 국제 거래에 널리 이용되고 있고, 국내 기업이나 금융기관도 국제 거래에 자주 이용하고 있다. 이러한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설립하여 거래하는 것은 국내외적으로 적법, 유효하고, 어디에서도 이를 금지하거나 처벌하지 않고 있다. 다만 각국은 세법상 이에 대응하는 규정을 두어 과세를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1995년 국제조세조정에 관한 법률을 신설하면서 내국인과 특수관계가 있는 법인의 내국인 주주에 대한 배당간주 조항을 두어 이에 대응하고 있다.

정책적 판단에 따라 세법에 명확한 규정을 두어 조세피난처 법인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또한 조세피난처 법인의 설립이 명백히 국내 조세 회피를 위한 것이라고 인정될 경우에는 우리 세법의 기본 원칙 중 하나인 실질과세 원칙에 따라 조세 회피 행위를 부인하고 과세하는 것도 견해의 대립은 있을 수 있지만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조세 회피 행위로 과세하는 것과 탈세로 형사 처벌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조세 회피 행위는 조세법이 예정하고 있지 아니한 이상한 법 형식을 이용하여 조세의 부당한 감소를 기도하는 행위로서 그 행위 자체는 사법적으로 적법 유효하며 세법적으로도 형사 처벌의 대상은 아니고 단지 경제적 실질에 따라 세금을 재계산하여 부과할 대상이다. 세법상 조세 회피 행위를 부인한다는 것은 회피된 조세를 부과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지 형사 처벌에 주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단순한 조세피난처 법인 이용에 그치지 않고 조세 포탈을 위한 적극적 행위까지 한 경우라면 마땅히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될 것이다. 조세피난처 법인의 이용이 개재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형사 처벌의 대상으로 기소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조세피난처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음 두 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우선 기업 활동 및 투자 활동을 하는 민간 주체는 국내 세법의 적용을 우회하는 방법으로 부당하게 조세 이득을 도모하는 행위를 자제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정부는 역외에 소재하는 회사라면 조세 회피 목적인지의 여부를 불문하고 모두 그 존재나 행위를 부인하여 자유로운 기업 활동을 제약해서는 안 된다. 조세피난처 특수목적법인 논란에 휩싸인 세계적 기업 구글의 에릭 슈밋 회장이 "구글은 여러 나라가 제공하는 인센티브를 따랐을 뿐이다. 세금을 아끼는 방법을 거부하지 않겠다"고 한 말의 의미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역외 탈세를 근절한다는 차원에서 조세피난처 법인을 이용한 거래 자체를 조세 부과를 넘어 형사 처벌로까지 강력히 규제할 필요성이 있다면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따라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도 순리라고 생각한다.

원문보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1/07/201401070441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