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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권 칼럼] 강남 사모님들의 강남불패론 / 조성권(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조성권 초빙논설위원 ·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농구 경기 중 한 선수가 슛을 연달아 넣으면 동료들은 이 선수에게 패스를 더 많이 한다. 이에 자신감이 붙은 해당 선수의 슛 성공 횟수는 증가한다. 선수나 감독은 물론 관람객 모두 이 선수가 '마이더스의 손'이 되어 슛을 계속 성공시킬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실제 통계 보면 그렇지 않다. 자신의 실력 기준 평균 이상으로 슛을 성공시킨 경우는 드물다. 자유투 실험을 해보면 첫 번째 슛이 두 번째 슛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음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행동경제학자는 이를 ‘뜨거운 손 오류(Hot-Hand Fallacy)'라고 부른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의 의지로 상황을 주도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강남은 대한민국 최초로 개발된 신도시다. 1970년 경부 고속도로가 압구정동에서 개통된 이듬해부터 강남으로의 이주가 시작됐고 이후 개발과 부동산 규제 정책이 혼합돼 나타났다.
강남 아파트 가격 폭등은 2000년에 시작됐다. 한 때 1주일 사이에 1억원이 오르는 등 집값이 폭등하자 '강남불패(江南不敗)'라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이에 2003년 노무현 정부는 투기과열지구지정, 양도세 중과 등 30여건의 대책을,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3년 13차례 부동산 안정 조치를 내놨다.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통제 가능한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대책을 쏟아 부은 것이다. 실제로 정책이 나오면 그때마다 부동산 열기는 이내 가라앉았고 매번 강도를 높인 처방은 제대로 먹혔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6.19 대책 등 벌써 6건의 조치와 방안을 내놨다. 하지만 이미 내성 강한 괴물이 된 ‘강남불패‘에 야속하게도 더이상 약발이 먹히질 않는 것 같다. 이에 정부는 극약 처방전을 만지작거리는 상황이다.
오랜기간 강남에서 살아온 사모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강남 사모님들은 "정부가 ‘뜨거운 손 오류’에 빠졌어요. 상황을 주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강남불패를 만든 겁니다. 강남 집값은 2009년, 2015년에 뛰었어요. 5년 이상 집값 상승이 지속되면 관련 정책의 영향으로 상승세가 꺾였죠. 하지만 얼마 지나 집값은 다시 뛰었어요. 이제 시장은 부동산 규제 조치 발표를 집값 상승의 신호탄으로 여겨요. 현 정부가 부동산 안정에 서두르는 모습을 두고 '노무현 정부 시즌2’라고도 하고요. 강남불패는 지속될 겁니다.”
이유를 물었다. 그들은 미국의 고전적 디자인 시대 골프장 순위를 정하는 기준 8가지를 인용해가며 강남불패론을 한 마디씩 거들었다.
“위치(Location)가 최고잖아요. 사통오달(四通五達). 사람들은 골프장에 갈 때 1시간 10분 가량 지나면 지루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강남을 시발(始發)점으로 두고 컴퍼스 대고 그리면 그 시간 안에 갈 만한 곳 모두가 있어요.”
“경관(View)도 최고죠. 풍수가들은 강남의 상(相)이 좋아졌다고들 합니다. 우리나라는 백두대간이 남북으로 뻗어 있어 동서보다는 남북으로 기(氣)가 모인다고 해요. 서울에만도 29개의 다리가 있어 강북의 기가 강남으로 뻗었다고들 합니다. 허허벌판이었던 강남에 들어선 고층 아파트와 빌딩들이 비보(裨補)가 돼 바람 길을 만들어 기가 살아 있는 곳이 되었다고 합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매입한 이유는 강북에서 살 수 없기 때문이었어요. 살다보니 집값이 뛴 거지 우리가 올린 게 아닙니다. 진흙탕 속에 지어진 강남이 활지(活地)가 된 거죠.”
“디자인은 또 어떻고요. 가장 살고 싶은 동네 1순위죠. 교통, 교육, 편의시설 같은 생활 인프라 측면에서 대체 불가능한 지역이 됐어요. 오죽하면 남겨야 하는 ‘똑똑한 한 채’는 강남 아파트라고들 하겠어요. 자사고 폐지 움직임에 학군 수요도 늘어 서울에 집 한 채 보유한 중산층들은 지금을 강남 입성의 호기로 여긴답니다. 지방에서 전입하는 분들도 부쩍 늘었어요.”
“Playability, 뭐라고 번역해야 하나. 기타를 칠 땐 연주 감이라고 하는데, ‘강남 사는 맛’이랄까, 그런 게 있어요. 좋은 골프장에서는 위험을 극복하면 좋은 보상을 받는 공정함이 있잖아요. 샷 밸류(Shot Value)말이에요. 룰과 에티켓도 있고요. 강남은 살면서 손해를 본다는 느낌이 없어요. 이만한 신도시를 만들기도 어렵고 강남에는 더 만들만한 곳이 없다는 게 값을 올리는 거죠.”
“Rememberability(想起力)가 현실화됐어요. 골프를 마치고 나서 모든 홀이 기억나야 좋은 골프장이라더군요. 고향은 골목입니다. 골목이 살던 사람을 부르는 거거든요. 결혼한 우리 애들이 제 자식 키운다고 고향 골목을 찾아와요. 기사에서 보니 지난해 80세 넘은 노인들이 외곽에 살다 강남으로 대거 돌아왔답니다. 의료, 간병서비스 등 환경이 좋아서랍니다. 강북의 기득권을 포기하고 이주한 강남 인구가 3대째 신흥세력이 된 겁니다.”
“History(역사). 골프장은 30년이 넘어야 모든 게 활착(活着)한답니다. 강남 개발 50년은 역사입니다. 지금도 개발 중이예요. 크레인 숫자를 세보세요. 우리 모두의 노력으로 만든 살기 좋은 땅이죠. 문제는 규제를 해도 집값이 떨어지리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재건축 연한이 길어지고 비용이 추가돼도 집값 상승분이 더 클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요. 정권 바뀔 때마다 달라지는 고만고만한 정책이 오히려 문제입니다.”
우리 속담에 ‘옛법 버리지 말고 새법 내지 마라’고 했다. ‘강남필패(江南必敗)’라고 으름장만 놓을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기미나 징조마저 살피면서 정책을 세심하게 다듬는 동시에 일단 시행하면 바뀌지 않는다는 신호만 제대로 내보내도 시장은 안정된다. 정책의 연속성이 참신함 보다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