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닫기

전체메뉴

Quick Menu

Quick Menu 설정

※ 퀵메뉴 메뉴에 대한 사용자 설정을 위해 쿠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메뉴 체크 후 저장을 한 경우 쿠키 저장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언론속의 국민

[글로벌포커스] 시장경제의 힘 활용하는 김정은 / 안드레이 란코프(교양대학) 교수

  • 작성자 최윤정
  • 작성일 18.04.10
  • 조회수 7540

지난 몇 년 동안 평양을 방문한 관광객들은 크게 놀랐다. 그들의 생각과 달리 북한의 수도는 만성적인 위기에 시달린 도시처럼 보이지 않았다. 새로 지은 고층 아파트도 많고 거리에서 휴대폰을 쓰는 시민이 많이 보이며, 명품까지 잘 팔린다. 차량이 많아져서 교통이 막힐 때도 있다.

평양은 아직 어렵게 사는 도시이지만, 김정일 시대보다 살기가 많이 좋아졌다. 이것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다. 중국과 베트남을 모방하는 시장화 촉진 정책을 김정은 정권이 실시하기 시작한 증거가 많아지고 있다. 김정은과 북한 엘리트 계층에서 보면 이것은 매우 합리주의적인 선택이다. 그들의 장기적인 목적이 권력 유지와 나라의 발전이라면,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은 시장화 개혁밖에 없다.

김정은은 이러한 정책의 중요성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다. 현대 세계의 흐름을 제대로 알 수 없었던 김정일과 달리, 김정은은 장기 유학 경험도 있고 외국어도 할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김정은은 `사상적 착각`이 거의 없는 사람이다. 학생 시절에 배웠던 소련식 레닌주의의 영향을 죽을 때까지 극복하지 못했던 김정일과 다르게, 김정은은 시장 경제의 힘을 잘 이해하고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시장경제 도입이 불러온 국력 증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 때문에 김정은은 권력을 장악한 직후부터 자신에게 도전할 수 있는 엘리트 일부를 숙청하고, 핵무기와 ICBM을 개발함으로써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아버지가 너무 위험하게 생각해서 시작하지 못했던 경제개혁의 길에 접어들었다. 물론 국내 안정 유지를 다른 모든 것보다 중요시하는 김정은 정권은 개혁을 하더라도 `개혁`이란 말조차 쓸 수 없다. 그렇지만 그의 경제정책을 보면 1980년대 초 덩샤오핑 시대 중국의 정책과 비슷한 점이 매우 많다.

중국처럼 첫걸음은 농업 개혁이었다. 2012년에 김정은이 정한 `6·28 방침`에 의해서 농업에서 포전담당제가 도입되었다. 장기적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을 지정받은 농민들은 노력할 인센티브가 생겼고, 농산물 생산량이 20% 이상 늘어났다.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식량 문제가 남아 있지만 기근의 위협이 사라졌다.

공업에서 2014년부터 실시한 `기업책임관리제`는 기업소 경영자들에게 이전에 상상하지 못했던 자율성을 제공했으며, 오래전에 마비된 명령제 계획 경제를 부분적으로 해체하고 시장 메커니즘으로 대체하는 것을 가속화했다. 기업소는 재료와 부품을 시장에서 자유가격으로 구입하고, 완성품도 시장에서 팔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시장성이 있는 상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노동자들의 월급은 30~50달러까지 올라갔다. 우리가 보기에 매우 낮은 수준이지만, 김정일 시대의 1달러 월급을 감안하면 상황이 얼마나 좋아졌는지 알 수 있다.

1990년대 자발적으로 생긴 이후 경제에서 큰 비율을 차지하게 된 비공식 시장 경제에 대한 태도도 많이 바뀌었다. 김정일 시대에 `돈주`로 알려진 북한의 신흥 사업가들은 가끔 단속과 진압의 대상이 되었는데,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개인 사업에 대한 단속이 완전히 중지되었다. 북한 정권은 암묵적으로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돈주들이 국가 기업과 협력하는 것을 환영하고 있다. 최근에 나온 북한 법률에서는 `내국인`, 즉 `돈주`의 개인 투자에 대한 언급까지 생겼다. 관광객들이 주목한 새로운 고층 아파트는 돈주의 투자에 의해서 건설되었고, 평양 미인들이 입은 옷도 수많은 경우 개인이 창업한 공장에서 만들어졌다.

우리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김정은 시대 북한은 1980년대 시작한 만성적인 경제 위기를 잘 극복했다. 한국은행은 2016년 북한 성장률을 3.9%로 추정했는데, 평양 주재 외교관과 전문가 대부분은 보다 더 높은 추정치를 제시했다.

당연히 시장화가 불러온 경제성장은 사회양극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잘 못사는 사람들의 생활도 좋아지고 있기 때문에, 현 단계에서 북한 주민들이 양극화에 대해 불만이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고급간부와 돈주들이 비싼 수입차를 타고 있지만, 형편이 어려운 서민들도 옥수수밥을 매일 잘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북한 정권이 직면한 문제점과 난관들을 감안하면, 김정은 정권이 이 성장을 유지할지 의심스러울 수도 있는데, 현 단계에서 북한식 시장화의 성공은 인상적인 것이다. 이것은 놀라운 게 결코 아니다. 세계 경제사가 여러 번 보여주는 것처럼,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는 민주국가에서도 독재국가에서도 잘 돌아가며, 생활 수준의 향상을 불러오는 경제 모델이다. 당연히 북한도 예외가 아니다.

 

출처: http://opinion.mk.co.kr/view.php?year=2018&no=226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