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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시론] 최저임금, 지자체·주민에 맡겨야 / 이호선(법학부) 교수

  • 작성자 최윤정
  • 작성일 18.08.13
  • 조회수 9673

얼마 전 출근길 차 안 라디오에서 어느 청취자가 보낸 짧은 사연 하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한 내용을 다루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어느 도시의 편의점에서 근무한다는 분이 자신은 밤12시부터 다음날 6시까지 편의점에서 일하지만 시간당 6,000원을 받고 있다는 것이었다.

시간당 6,000원이면 지난해도 아닌 재작년 최저임금인 6,030원 수준이다. 그 사연의 뉘앙스는 법정 기준에 한참 모자란 급여에 대한 불만보다는 그 지역의 동종·유사 직종의 전반적인 임금 수준이 그렇다는 체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도시는 최근 주력 산업이 급격하게 몰락의 위기에 몰리면서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돼 고용유지지원금 등 중앙정부의 특별지원까지 바라봐야만 하는 곳이었다.

그 사연을 접하면서 자칫하면 한 도시 전체의 자영업자가 범법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도시를 생업의 터로 삼을 수밖에 없는 고용주나 피고용인들이 지역의 경기 수준을 감안해 서로 이해하고 합의한 임금 수준이라 하더라도 현행법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에는 형사 처벌과 제재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이런 입법의 경직성은 경제의 활력을 저해하고, 사법적 정의까지 무력화하고, 나아가 꼭 지켜야 할 법적 가치마저 모호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게 된다. 정책을 구상하고 입법화하는 과정에서 염두에 둬야 할 두 가지 큰 원리가 있다면 보충성(subsidiarity)의 원리와 연대성(solidarity)의 원리다.

보충성의 원리에 따르면 공동선을 달성하는 데 하부조직이나 개인이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그보다 상위조직이 나서서 그 기능을 가로채서는 안 된다. 상위기관들은 가능한 개인적 주도권을 북돋우고 보호하는 역할에 그치고, 반면 개인과 하위기관은 타인들이나 상위기관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들은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단 행동의 주체는 가능한 하위조직과 개인 단위로 내려가야 하는 것이 보충성의 핵심이다. 이 원리는 유럽연합(EU) 입법 정책의 중요한 한 축이고 우리 헌법재판소 역시 헌법적 질서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 개인이나 하위조직이 공동선을 위해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차상위 내지 그 위의 조직이 개입해 지원할 의무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연대성의 원리다. 임금노동자의 삶을 보장하기 위한 정책은 연대성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다. 연대성은 공동체를 결속시키고 유지하기 위한 배려와 공감의 다른 말로 EU 기본권헌장에서 중요한 한 원리를 차지하고 있다.

양자를 대립적, 긴장관계로 보는 시각도 있으나 연대성이 목표라면 보충성은 이를 보다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최저임금을 비롯한 최근의 노동정책 추진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무시된 원칙이 바로 보충성이다. 이로 인해 정책의 구체적 타당성·형평성이 문제가 되고 심지어 소규모 사업자들의 불복종운동과 대규모 범법자 양산까지 우려되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보충성의 원리를 헌법상의 주요 원리로 인정하는 결정을 내리면서 “통제는 자승법칙(自乘法則)에 의해 더 많은 통제를 요구하며 관료주의·획일주의·형식주의에 치우쳐 비능률·낭비·빈곤·무기력·몰인정을 배태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오늘의 사정에 비춰볼 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렇다면 이 보충성의 원리를 지금이라도 활성화해 법의 경직성을 탈피하고 연대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필자는 긴급 처방으로서 규제입법 적용 여부의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에 줄 것을 제안한다. 우선 고용위기지역, 산업위기대응 특별지역 등에 한시적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주민의 뜻을 물어 최저임금 등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법을 만들어 숨통을 틔워줌으로써 기존 제도의 획일성을 벗어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성과를 보고 각 지역 주민들이 자신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법적 규제의 정도를 구체적 사정에 맞춰 스스로 정하도록 모든 지방자치단체에 이를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중앙정부의 직접적인 재정지원 부담을 줄이면서 자치단체와 주민이 그 지역에 걸맞은 산업·경제정책을 주도하는 데 도움이 되고, 궁극적으로 지방분권 강화, 정책의 정당성을 위한 대표성 확보라는 민주주의 원리에도 부합한다. 보충성의 원칙이 뒷받침되지 않는 연대의 추진은 비현실적이거나 미처 예상하지 못한 부작용만 양산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특히 그것이 법의 이름으로 강제될 때는 더욱 그렇다. 

출처 : http://www.sedaily.com/NewsView/1S3C0AE0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