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사는 지난 5일 ‘판매부진 및 해외공장 건설·운영을 이유로 노조와 공동결정 없이 일방적인 정리해고, 희망퇴직을 실시하지 않는다’는 등 노조의 경영참여 요구를 상당부분 수용하고, 주5일 근무제를 9월1일부터 조건없이 실시키로 하면서 올 임단협에 잠정 합의했다. 노조가 부분파업을 시작한 지 42일만의 일로서 긴급조정권 발동에 직면한 노사가 극적인 타협을 이루어 그 의미가 크다.
국내 대기업 중 근로조건의 저하 없이 주5일 근무제를 실시키로 하기는 현대차가 처음이다.
전경련, 경총 등 재계는 현대차 노사합의에 대해 ‘외자유치에 방해되는 나쁜 선례’라며 크게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주5일(주40시간) 근무제는 관련법안이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사이 이미 금속산업노조가 7월 중순 사용자들과의 중앙교섭을 통해 합의, 상당수 협력업체들이 먼저 시행하게 된 상황이다. 현대차의 경우 이미 1996년부터 ‘주42시간-격주휴무제’를 실시하고 있었다는 점에도 유의해야 한다.
이런 사정들을 종합할 때 이번 현대차 노사의 합의는 노동분쟁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선례가 되었다는 평가에 인색해서는 안된다. 물론 다른 사업장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여 이 합의에 대한 호불호(好不好)를 개진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분쟁의 자율적 해결이라는 헌법적 요청에 비추어볼 때 이 합의는 마땅히 존중돼야 하며 다른 업체는 물론 앞으로의 제도개선 논의에서도 참고할 만한 내용이라 할 것이다. 이 기회에 6월28일 철도파업 무력진압과 7월17일 전교조 위원장 구속 이후 악화일로를 걷던 노·정관계도 되돌아보아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포브스’와의 회견에서 “이제는 노동자들도 자율권을 갖고 활동할 자유가 주어졌으니 특혜도 해소되어야 한다”고 언급한 바로 다음날 철도파업 현장에 경찰 병력이 투입되었다. 철도파업에서 정부는 ‘법과 원칙’ ‘불법 필벌’의 입장을 내세워 시종 강경입장을 고수하여 노조를 굴복시켰다. 또한 8월2일 철도노조를 상대로 97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철도노조는 ‘4·20 노·정합의 위반’과 관련해 정부를 상대로 10억원의 손해배상을 맞청구했다. 전교조도 위원장 구속에 항의, 참여정부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참여정부는 출범 초기 ▲폭력·파괴행위자를 제외한 불구속 수사 관행 확립 ▲손배·가압류 남용 방지 ▲정당한 쟁의행위 범위 조정 등의 방향을 제시한 바 있지만 어려운 경제사정을 이유로, 또한 재계나 보수언론의 저항에 밀려 노동정책의 기조가 선회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노대통령이 경제인들과 삼계탕 회동을 한 이후 대화와 타협의 노사관이 노조의 도덕성과 책임성 결여를 비난하는 것으로 돌변했다는 비판도 있다.
노무현 정부가 ‘대화와 타협’의 친노동정책으로부터 ‘법과 원칙’의 길을 택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노동분쟁의 해결에 있어서 이 둘은 다른 것이 아니다. 노동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면 ‘친노동적’이고 경찰력 등 ‘무력’으로 해결하면 ‘공정한 법집행’으로 보는 것은 개발독재시대의 타성이다.
근로자의 단체행동권 행사에 경찰력을 투입하여 무력으로 진압함으로써 끝없는 사회갈등을 불러일으켰던 관행에 대해 국제노동기구(ILO)를 비롯한 국제사회의 충고는 계속되고 있다. 철도노동자들의 평화적 집회를 무력으로 해산한 것을 ‘법과 원칙’에 따른 것으로 보기 어렵다. 참여정부는 비판을 피하는 데 급급한 나머지 노동정책에서의 갈지(之)자 횡보를 하지 않았나 돌이켜보고 초심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