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청와대 정책실장(50)은 노무현 대통령과 가장 코드가 잘 맞는 핵심 참 모로 평가된다. 노 대통령 학계 인맥의 좌장 격으로 참여정부 핵심 국정 의제 인 '지방 분권과 국가 균형발전' 철학을 가다듬었고 신행정수도 아이디어를 대통령에 제공한 이론적 후원자이기도 했다. 참여정부 출범 후 정부혁신지방분 권위원장을 지내며 정부 개혁과 국토 균형발전에 대한 토대를 마련하는 데 노 력해왔다. 매일경제는 지난 14일 정책실장으로 자리를 옮긴 김병준 실장에게 참여정부 2기의 국정운영 방향과 한국 경제의 나아갈 방향 등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경제 위기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다. 경제를 살리는 차원에서 하반기에 추 진할 정책은 무엇이 있는지.
▶ 단기적 처방으로 될 게 있으면 괜찮은데 사실은 답답한 부분이 있다. 정부 의 기본적인 생각은 장기 처방이다. 거시경제정책은 대외개방체제에서 효과에 한계가 있으므로 미시적 산업정책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추진할 것이다. 경제 기초여건(펀더멘털)을 강화하는 게 경제정책의 중심이다. 다만 이 정책은 시간 이 걸린다.
정부는 우선 침체 가능성이 있는 건설경기를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동원해 살 릴 생각이다. 다만 집값 문제가 있으므로 부동산 투기를 자극하지 않는 범위에 서 용의주도하게 할 생각이다. 중소기업은 장기적으로 금융시스템을 개선하고 단기적으로 여러 가지 지원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정부는 개혁이 장기적 경제성장의 엔진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뚜렷하게 제 시된 방안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 개혁 차원에서 구조적 처방 내용은 꽤 많다고 생각한다. 기업 투명성 제고, 공정거래 차원의 대기업ㆍ중소기업간 관계설정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신용평 가제도 개선과 금융감독 등에 대해서도 상당히 깊숙한 논의가 돼 있다. 과학행 정체계도 바꿔서 효과적 연구ㆍ개발(R&D)이 가능하도록 하고 기업 체질을 개선 하는 노력도 진행중이다. 전체적으로 구조적인 차원의 개혁이 과거 어느 때보 다 심도 있게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개혁을 강조하면서 기업의 어려운 얘기를 많이 듣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다.
▶ 정부는 최대한 기업 얘기를 많이 들으려고 노력한다. 나 자신도 경제5단체 를 모두 만났고 지난번에 노 대통령도 기업인을 직접 만났다. 대통령은 경제인 과 만남에서 40여 건의 건의를 받았는데 이 중 30여 건을 수용하기로 했다. 정 부도 기업의 투자가 살아나야 경제가 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기업인과 만 남에서 서로간 이해를 높이고 있다.
기업이 강력히 요청하는 규제개혁과 관련해 정부가 독립적인 작업단을 만들 계 획이다. 정부는 이 작업단에 참여하는 인사 중 기업인 비중을 30% 혹은 50%가 량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기업에서 직접 들어온 사람이 규제개혁을 하는 데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경제위기나 기업도시 신설에 대한 인식이 안이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 가장 경계해야 할 사항은 '자기유도형 불황' 이다. 청와대에 근무하는 사람 들이 민생경제가 어렵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다만 좋아진다는 믿음을 가질 때 투자가 되는 것이고 대통령은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그러한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기업도시와 관련해 수도권ㆍ충청권이 곤란하다고 한 것은 국토균형발전을 생각 해서 그런 것이다. 아직 결론을 내린 사안은 아니다. 기업도시를 하면 당연히 특혜를 요구할 텐데 사람 몰리는 곳에 규제완화를 해주기는 어렵다. 기업도시 는 균형발전의 틀 속에서 용해돼야 한다
-김선일 씨 피살 사건에 잠시 가려졌지만 신행정수도 문제는 계속 관심이 갈 텐데.
▶ 4개 후보지에 대한 평점 작업은 거의 끝나가는 것으로 안다. 최종 후보지는 8월중 발표될 것이다. 신행정수도를 놓고 국민투표를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얘 기가 나오는데 정부는 현 상태에서 법이 정한 데로 갈 수밖에 없다. 법안을 폐 기하거나 국민투표에 부치하는 것은 국회가 결정할 사항이다. 대통령이 국민투 표 제안은 할 수 없다. 대통령이 얘기하듯 꼭 문제가 있다면 국회가 논의할 필 요가 있다.
이는 대통령이 다수당인 여당을 믿고 함부로 얘기하는 게 아니다. 열린우리당 도 일사불란하지 않다. 법이 통과됐는데 지금에 와서 국민투표를 한다면 국회 즉 입법부 모양이 어떻게 되겠는가. 국민투표는 국가통합 과정이기도 하지만 이를 두고 논쟁이 시작되면 그게 국론분열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
-정부조직개편 작업은 어느 정도 진행됐나.
▶ 당초 6월 말까지 1차로 큰 틀(하드웨어)은 다 만들어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중간에 윤성식 신임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으로 바뀌어 조금 늦어지게 됐다. 오는 7월 10일을 전후해 정부안이 최종 발표될 것으로 생각한다. 그 다음에 당 정협의와 공청회가 이어질 것이다.
금감위ㆍ금감원 통폐합은 없지만 규제개혁 차원에서의 노력과 역할 재조정은 있을 것이다. 금융감독기구의 인적 인프라스트럭처 강화도 이뤄질 것으로 본다 . 여성부 일부 기능도 변화될 가능성이 있다. 산자부 중소기업청 중소기업진흥공단 중소기업특별위원회 등 중소기업 관련 조직 기능도 일부 조정될 것이다.
통상교섭본부도 산자부로 갈 가능성은 없지만 변화는 있을 것이다. 현재 통상 교섭체계의 가장 큰 문제는 대외 교섭과 대내 이해관계 조정이 유기적으로 잘 연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다 보니 대외 교섭이 진행될 수록 이해 관계자 의 데모도 늘어난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를 두고 고민중이 다.
-한국이 세계를 보지 못하고 구한 말처럼 내부에서만 싸운다는 얘기도 있다. 장기적 국가경영 연구도 필요하지 않은가.
▶ 싸우는 것은 없다. 현재 다른 나라가 5년ㆍ10년ㆍ20년 뒤를 어떻게 보는지 파악하는 전략적 벤치마킹도 중시하고 있다. 과거 인수위시절 국가경영전략을 미국 헤리티지재단에 보내 조언을 구한 적도 있다. 이런 과정에서 전체 로드맵 이 도출되었다. 각 분야에 전문가는 많으나 불확실성 시대에 누구도 자기확신 을 갖기 어려우므로 다양한 의견 수렴을 통해 장기 전략을 짜 나갈 것이다.
■ 약력
△54년 경북 고령 출생 △대구상고ㆍ영남대 정치학과 졸 △미국 델라웨어대 정 치학 박사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 △지방자치실무연구소장 △경실련 지방자치 위원장 △서울시 시민평가단장 △노무현 대통령 후보 정책자문단장 △대통령직 인수위 정무분과 간사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장 △청와대 정책실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