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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속의 국민

'하와이 한인 전쟁포로' 생활 밝혀져 / 김도형(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연구원) 동문 (국사 80)

  • 작성자 중앙
  • 작성일 04.03.26
  • 조회수 9794
배추 길러 김치 담그고 美軍이 준 쌀로 술 빚어

태평양전쟁 일본군 소속 3000여명

1944년 작성 '억류소 시찰기' 찾아


태평양전쟁 당시 하와이에 수용된 한인 전쟁포로 3000여명의 생활상을 자세히 밝히는 자료가 공개됐다. 워싱턴 주재 스웨덴 부영사 에릭 데 라바이가 1944년 9월 2일과 10월 3일 등 두차례에 걸쳐 수용소를 시찰하고 조사한 내용의 보고서 '하와이 억류소 시찰기'를 김도형 박사(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일본의 아시아자료센터에서 찾아냈다.










▶ 하와이 한인포로가 귀환할때 타고온 제너럴 언스트호(上), 하와이 포로수용소 한인포로 막사(中), 하와이 한인포로들의 모습.






이 자료는 국민대 한국학연구소(소장 지두환)와 한국근현대사학회(회장 최기영)가 26일 국민대에서 여는 '해방 후 해외 한인의 귀환과 정착'이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에서 '하와이 한인 전쟁포로의 활동과 귀환'이라는 논문을 통해 발표된다. 남태평양 지역에서 일본군에 소속돼 있다가 붙잡힌 약 3000명의 포로가 하와이에 수용됐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으나 구체적인 생활상이 밝혀지기는 처음이다.



심포지엄에서는 관동군.연합군 포로감시원과 하와이 전쟁포로 등 태평양전쟁 관련자들의 귀환 문제와 귀환 이후의 사회적응, 중국 내 한인의 법적 지위 등을 다룬 6편의 논문이 발표된다.



20여쪽의 '하와이 억류소 시찰기'에는 전장에 끌려갔다가 포로가 된 한인들의 일상사가 상세히 기록됐다. 한인 포로들은 미군이 공급해주는 쌀을 주식으로 했으며, 배추를 재배해 김치를 담가 먹기도 했다. 포로 중에는 쌀에다 설탕과 효모를 넣어 술을 빚어 마시는 이들도 있었다.



이외에 세면기와 샤워시설 등 포로막사의 모습, 제복.하의.양말.구두.모자 등 피복 지급상태, 세탁소 작업 등 노역에 따른 수당 지급 내역, 영어학습 실태 등도 묘사됐다. 한인 포로들은 60쪽가량의 주간지 '자유한인보'도 발행했다. 7호까지 발간된 '자유한인보'는 미국 생활 소개.독자 투고.한국소식 등을 실었으며, 두명당 1권씩 배포됐다.



심포지엄에서는 또 재미한족연합위원회의가 이들 한인 전쟁포로를 미군지원 사업에 동원하려 했던 사실을 밝혀주는 '전경무가 매클로이에게 보낸 편지'(44년 6월 5일) 등의 사료도 공개된다.



재미 한족연합위원회가 43년 12월께 미 육군성과 협의하여 군무원.적 지역 요원 등으로 활용하려다 제네바협정.헤이그협정 등 국제조약 위반이라는 지적 때문에 포기했다는 내용이다.



한인포로 중 2614명은 45년 12월 25일 하와이를 출발하여 인천에 도착했으며, 46년 8월에는 나머지 105명도 고국으로 귀환했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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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3.25 17:48 입력 / 2004.03.26 08:34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