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입영을 거부하였던 3인의 ‘여호와의 증인’ 신도에 대하여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이로써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논쟁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앞서 2002년 1월에는 서울남부지방법원 박시환 판사가 현행 병역법이 양심의 자유와 병역의무를 조화시킬 수 있는 대체수단을 마련하지 않아 헌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며 위헌제청을 신청하였다. 아쉽게도 헌법재판소는 묵묵부답이다. 이러던 차에 이정렬 판사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입영 기피의 정당한 사유로 판단하여 무죄를 선고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이 판결은 몇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유사 이래 최초로 양심의 자유를 천부인권으로 선언한 점, 그것도 다수의 양심이 아니라 소수자의 양심을 중시한 점, 나아가 병역거부의 결정과정과 결정 이후의 사회활동을 평가하여 양심의 진정성을 판정한 점, 마지막으로 대체복무제를 대안으로 촉구한 점 등이다.
-대체복무 얼마든지 가능-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병역거부자를 후원하는 연대회의는 다음과 같은 대체복무제 안을 마련했다. 첫째, 병역을 거부할 수 있는 사유는 종교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널리 윤리적 사유도 포함한다. 둘째, 병역을 거부하려는 자는 신청서·이유서·이력서 등의 서식을 제출하고, 관계전문가로 구성된 대체복무위원회에서 엄정하게 양심의 진지성을 심사받는다. 셋째, 병역거부자로 인정된 자는 사회복지시설, 병원보조, 환경보호, 이동사회봉사, 장애인보조봉사, 재난구조, 교육봉사 영역 등에서 대체복무를 한다. 넷째, 대체복무기간은 군복무기간에 준해서 정하고, 예비군훈련과 동일하게 8년에 걸쳐 이의 대체복무도 실시하고, 군인의 전시동원에 비추어 전시에도 대체복무영역에 투입한다.
이 안에 대한 가장 많은 반론은 전부 대체복무를 하겠다면 어떻게 되는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와 이기적인 기피자를 어떻게 판별할 수 있는가, 분단 상황에서 대체복무제 도입은 시기상조 아닌가 등이다.
우선 대체복무를 군복무보다 쉽다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소록도에서 한센병 환자를 돕거나 병원에서 중환자를 돕는 일은 군대를 피하겠다는 마음으로는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대만도 2년 전 2,000명 정원의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였지만 신청자가 줄어 정원조차 채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양심적 결정의 진정성은 독심술을 부리지 않고는 제3자가 외부에서 흑백을 가릴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대체복무제도가 하룻밤 공상에서 현실로 내려온 것이 아니라 300~400년에 걸쳐 이루어진 지혜의 총화라는 점, 여러 나라에서 엄정한 심사절차를 확립하여 별 무리없이 운영해오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아울러 자신은 애국적인 동기로 기꺼이 군대를 가는데 다른 자들은 이기적으로 병역을 기피할 것이라는 우려는 동료와 미래세대에 대한 본전심리가 아닐까?
-안보공백도 기우에 불과-
마지막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교도소에 투옥하는 일은 국가안보와 군인의 사기진작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나라는 6개국에 불과하며, 전세계 병역거부자의 80%가 한국의 감옥에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군입대자 중에서 약 20% 정도는 군인이 아니라 기능요원, 전문요원 등으로 근무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한다면 안보공백을 우려하는 논리는 신화에 가깝다.
영국·미국은 세계대전 중에 대체복무제를 도입했다. 개인에게 평화를 선택할 권리를 부여하는 나라는 망하는 법이 없다. 망한 나라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살해하고 투옥했던 나치제국이었다. 한국의 감옥을 거쳐간 1만여명의 병역거부자, 그리고 현재 감옥에 있는 600여명에게 눈을 돌려 군필자들은 분노를 승화시켜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