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智異山). 높이 1915m인 이 산의 위치를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산을 영남과 호남 문화가 어우러지는 특별한 영역으로 보는 역사학자들이 2년간 지리산 연구에 매달린 끝에 산 곳곳에 서린 문화와 역사의 자취를 찾아내 연구서에 담아냈다. 최근 ‘우리 역사문화의 갈래를 찾아서―지리산 문화권’(역사공간)을 낸 조용욱·장석흥 교수, 이근호·장일규·여성구 박사 등 국민대 국사학과 연구자들이 그 주인공들. 이들은 “지리산이야말로 역사상 하나의 문화권(文化圈)으로 설정해야 할 곳”이라고 입 모아 말하고 있다.
사는 사람도 적은 산은 문화적 통로라기보다는 하나의 ‘장벽’에 가까운데 어떻게 지리산을 ‘문화권’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일까. 이런 궁금증에 대해 조용욱 교수는 “지리산은 영·호남 문화가 만나 어우러지는 ‘역사의 광장’이었다”며 “지리산 곳곳에 자리잡은 쌍계사 화엄사 송광사 등의 사찰들을 중심으로 한 공간에서 우리 고유신앙과 불교 문화가 융합했고, 천태종과 조계종의 불교 사상이 서로 만났다”고 설명했다.
“조선시대 진주에서 발흥한 남명학파(南冥學派)가 섬진강을 따라 순천·남원까지 학맥을 확대했던 것을 보십시오. 그 과정에서 지리산 기슭에 터잡은 수많은 서원들은 중요한 공간이었습니다. 영·호남의 ‘원심력’이 너무나 강해 보여 그간 지리산 특유의 역사와 문화를 눈여겨보는 데 소홀했을 뿐이죠.”
지리산은 변혁의 시기엔 ‘민족운동의 근거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하기도 했다. 장석흥 교수는 “1861년 지리산 기슭의 단성에서 시작된 농민항쟁이 다음해 진주농민항쟁으로 이어졌고, 동학농민전쟁과 한말 의병 때는 장기 항전의 보루와도 같았다”고 말했다.
지리산의 통사(通史)인 이 책은 그야말로 ‘땀’의 산물이다. 국내에서 드물게 고적답사 과목이 전공필수인 이 학과에는 30년 넘게 축적된 방대한 ‘정보’가 존재했다. 학부생에서 석·박사, 교수까지 100여명의 팀원들이 지난 2년간 지리산에만 10여 차례 현장 조사를 다녀왔고, 산길·물길·관문·장시 등을 꼼꼼히 짚으며 영·호남이 한데 어울렸던 자취들을 찾아냈다. 강줄기와 능선과 고개를 자세히 그린 지도들, ‘지리산 문화권’을 직접 답사할 수 있도록 제시한 3개의 노정마다 이들이 흘린 땀이 느껴진다.
이들은 행정구역과는 다른 ‘문화권’이야말로 오랜 역사와 전통 속에서 통혼(通婚)권·생활권·학맥 등이 어우러져 형성된 역사문화의 공간이라고 말하고 있다. 앞으로 이들은 ‘탐라’ ‘금강’ ‘한강·태백’ ‘영산강’ ‘낙동강’ ‘서울·근기’ ‘강화’ 등의 문화권 총서들도 낼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