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은 최근 옛 안기부의 불법 도청사건에 대한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국가정보원이 김영삼정부에 이어 김대중정부에서도 조직적으로 불법 도·감청을 했다는 고백은 참으로 충격적이다. 노무현대통령은 8일 기자간담회에서 “우선 검찰조사를 지켜보고 구체적인 의혹이 있을 때 특검을 하든지, 국정조사를 하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문제는 노대통령의 이러한 편의주의적 주장이 국민과 야당을 설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과거 사례에서 보듯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은 특검뿐이다. 중립적인 특검만이 누가 불법도청을 지시하고 관여했는지, 불법도청 내용은 무엇이고 그 내용이 어떻게 정략적으로 활용됐는지, 불법도청 중단 시점은 언제인지, 현재 국정원은 불법도청을 중단했는지 등에 대해 철저히 조사할 수 있다. 미국은 워터게이트 사건이 종결된 후 1978년에 관행적으로 시행해 오던 특별검사제를 법률로 입법화하여 1999년까지 4대 정권에 걸쳐 21년간 운영했고 모두 20명의 특별검사를 배출했다. 대한민국 특검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이러한 미국의 경험을 배울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특검은 상설적으로 운영돼야 한다. 미국 특검법은 5년 기한으로 재연장을 허용하면서 상설·운영되었다. 따라서, 이란 콘트라 사건은 7년, 클린턴 대통령의 스캔들은 5년동안 특별검사가 장기간 수사를 담당했다. 반면, 한국은 99년부터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특검법을 제정하여 한시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국정원에 의해 94년부터 2002년까지 무려 8년 동안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불법 도청에 대한 수사를 기존처럼 최장 90일 정도 한시적으로 특검을 실시한다면 ‘수박 겉 핥기식’ 수사가 될 것은 자명하다.
한시적 특검제는 수사대상과 수사기간의 제한이라는 제도적 문제뿐만 아니라 검찰의 비협조 등으로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다. 이번 국정원게이트 사건을 계기로 최소 3년 이상, 재연장이 가능한 상설 특검제를 채택할 필요가 있다. 한편, 특검과 의회 조사위원회를 함께 운영하는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 상원은 73년 2월에 워터게이트 조사위원회를 구성했고 법무부는 동시에 특별검사를 지명했다. 의회조사와 특검이 독립적으로 동시에 운영되었고 두 기관의 정보는 긴밀하게 공유되었다. 미국 상원 워터게이트 조사 청문회에서는 닉슨 대통령의 최측근으로부터 백악관의 대통령 대화 녹음 테이프가 존재한다는 증언을 얻어냈다.
이 증언으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 은폐에 어느 정도 개입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고, 특검 수사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국회 조사위원회가 구성된다면, 정략적으로 운영되는 폐단을 막기 위한 특단의 조처가 필요하다. 과거 정권과는 무관한 초선의원을 중심으로 양식있는 외부 인사가 위원장과 과반수를 점유하는 형태로 조사위원회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조사위원회에서 특별법을 제정하고 제3기구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국정원게이트 사건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위상을 뒤흔든 중대 사건이다. 이 사건은 우리가 인권이 살아 숨쉬는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거듭나느냐 아니면 음습한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도청공화국으로 전락할 것이냐를 결정짓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국가의 틀을 다시 짜는 한이 있더라도 진상은 한 점 의혹 없이 철저하게 밝혀져야 한다. 과거 국정원의 불법 도청을 인지·관여했던 정치인들은 더 이상 비겁하게 숨지 말고 떳떳하게 고해성사를 하라. 또한, 정치권은 저급한 정치 공방에서 벗어나 눈을 크게 떠 국민을 바라보며 진정 국가를 위한 길이 무엇인지를 자문해 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