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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웹진unik-스페셜]한일청년 합작회사 랄라피포 사장, 이대곤

  • 작성자 박채형
  • 작성일 11.05.20
  • 조회수 10373

uniK : 블라스트비트 프로젝트란 무엇인가요?
이대곤 : 블라스트비트는 원래 아일랜드의 사회적 기업으로 시작해서 현재 영국, 미국, 남아프리카, 일본 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활동을 지칭하는데요. 청년들이 모의 회사를 차리고 기업 활동을 통해 얻어지는 수익금의 25%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는 운동이에요.

uniK : 블라스트비트 프로젝트가 한국에서는 최초로 시도된 것이라고 들었어요.
이대곤 :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블라스트비트 프로젝트를 처음으로 도입한 국가예요. 일본 블라스트비트 활동을 이끄는 마츠우라라는 분이, 일본국제교류기금과 함께 한국의 사회적 기업인 노리단 측에 제안을 해온 것이죠.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인 특수성 때문인지 지금껏 한국과 일본의 합작회사가 잘 유지되어 온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양국의 젊은이들이라면 과연 어떨까? 해낼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된 거예요. 그런 과정을 통해 한국에서 이 블라스트비트가 최초로 시도되었고, 그 결과가 바로 한일청년 합작회사 ‘랄라피포’인 것이고요.

uniK : 회사명인 ‘랄라피포(Ralapipo)’는 무슨 뜻인가요?
이대곤 :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 씨가 쓴 소설 중에 <랄라피포>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어요. 그건 ‘A Lot Of People(많은 사람들)’이라는 뜻인데, 저희는 앞 철자를 L이 아닌 R로 해서 ‘랄랄라~’ 할 때의 그 신나는 기분, 즐거운 뉘앙스를 담아내고자 했어요. 음악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자는 취지를 회사명에 담은 거죠. 한국과 일본의 12명 모두가 함께 의견을 모아서 결정한 이름이에요.





uniK : 이번 한일청년 합작회사 프로젝트는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각각 6명씩의 청년들로 구성돼 활동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서로 언어도 다르고 거리상으로도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함께 회사를 운영해나가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이대곤언어적인 문제도 그렇지만 사실 거리상의 문제가 더 컸던 것 같아요. 같은 활동 취지 아래 이벤트를 진행하고 수익을 내 기부를 해야 하는 것인데, 그런 부분들에 대한 의견 공유가 힘들었거든요. 그러한 물리적인 제약은 스카이프 회의나 페이스북, 구글 독스를 통한 문서 공유로 극복하고자 노력했어요.

uniK : 거리상으로 떨어져 있는 문제 때문에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셨네요?
이대곤 : 하나의 회사이고 하나의 기본적인 틀을 형성해야 하는데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나 사회적 환경의 차이가 더 큰 문제였어요. 그런 문제들은 사실 해결하기가 어려웠어요. 끊임없이 해결 방안을 찾고 노력을 하면서 진행해왔던 것이지, 완전히 해결을 하고 나서 진행해오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uniK : 언어적인 소통의 문제는 없었나요?
이대곤 : 저는 일어를 전혀 못해서 초반에 걱정을 많이 했지만, 한국 팀의 일본인 교환학생 2명이 많은 도움을 주었어요. 하지만 솔직히 언어의 문제는 크지 않았어요. 그래도 이번에 제가 느낀 것은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운 친구들이 확실히 그 나라의 문화도 더 잘 이해를 하더라고요. 의사 소통을 하는 데 있어서 양쪽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친구들이 좀 더 포용적이었던 것 같아요. 서로의 의견을 조금 더 수용할 수 있는, 한 마디로 소통할 수 있는 태도가 됐던 거죠.





uniK : 지난 2월 홍대에서 개최한 ‘만나게 되버렸다 콘서트’의 컨셉트는 어떻게 잡아나갔나요?
이대곤 : 원래 컨셉트는 홍대 일대를 일본 신주쿠의 거리처럼 꾸며서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보다 가깝게 느끼게 만들고 이를 통해 소통과 교류의 장을 만들고자 하는 거였어요. 그랬는데 마포구청에서 허가가 안 났고요.(웃음)

uniK : 첫 번째 컨셉트는 실패로 돌아갔군요?(웃음)
이대곤 : 한 평당 3만원의 금액을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결국 포기를 했고요. 그래서 나온 것이 ‘만나게 되버렸다’ 컨셉트였죠. 컨셉트 회의 도중에 일본인 교환학생 친구가 “아~ 모르게 돼버렸다…”고 말했던 거예요. ‘~하게 돼버렸다’는 표현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안 쓰는데, 일본 친구들은 한국말을 배울 때 많이들 써요. 거기에 착안을 했죠. 사실 ‘~하게 돼버렸다’는 언뜻 듣기에 어딘지 체념적이고 부정적인 어감이 강하지만, 저희는 ‘우리는 이렇게 서로 만나게 될(돼버릴) 운명이었다’ 라는 만남의 필연성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한국과 일본 청년간의 만남인 랄라피포도 그렇지만, 기획자인 우리들과 공연에 응해주신 아티스트 분들, 그리고 공연장에 모인 관객들 역시 ‘우리는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일 운명이었다’라는 어떤 구심적인 테마로 적용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요.

uniK : 예산 마련은 어떻게 하셨나요? 블라스트비트의 특징이 회사 운영에 드는 비용 역시 일정 부분 자체적으로 조달하는 것이라 들었거든요.
이대곤 : 사실 자금 부분이 가장 고민이었어요. 일본국제교류기금에서 회사 돌아가는 자금을 대는 것이 아니라, 이를 테면 일본 친구들이 한국 왔다갔다하는 데 드는 항공편 정도의 금액을 지원해주었거든요. 또 저희들이 일본으로 합숙을 갔을 때 3일간 체류하면서 드는 식대 정도의 비용을 제공해주셨고요. 운영하는 데 드는 나머지 경비 일체는 저희가 자체적으로 마련해 회사를 굴려야 했어요.

uniK : 실제적으로 개인 활동에 드는 부대 비용까지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했었군요?
이대곤 : 네, ‘만나게 되버렸다 콘서트’에 드는 비용의 스폰서를 구하려고 기획안을 작성했었어요. 하지만 시기적으로 불리했어요. 1, 2월 이때가 기업에서는 한 해 예산을 편성하는 시점이라 그랬던 것 같고요. 오히려 아티스트 분들께나 공연장을 대관하는 과정에서 저희의 취지를 설명 드린 후 다소 간의 금액 조정이라든가 하는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었어요. 공연 티켓을 팔아 얻은 수익금으로 어느 정도 회사 운영 비용에 충당했고요. 하지만 어느 정도 흑자를 내긴 했어요.

uniK : 이 프로젝트 수익금의 기부처는 일본의 ‘good’이라는 NPO단체였던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대곤 : 일본의 ‘자원 봉사, 워크 캠프(서로 다른 국적과 언어, 문화와 전통을 가진 여러 나라의 젊은이 10~15명이 2~3주간 자원 봉사 활동을 목적으로 공동체 생활을 하는 자원 봉사 및 국제 교류 프로그램)’ 활동을 중심으로 하는 good이라는 단체에 저희가 남긴 수익금 전액을 기부했어요. Good은 ‘한일, 청년, 기회를 준다’는 세 가지 키워드에 적합한 단체라는 저희의 기준에 부합해 선정된 곳이에요. 한일 교류 자원봉사 워크 캠프를 이 good에서 지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 캠프는 한일 양국의 대학생들이 주로 참가하는데, 시골 마을에 가서 일손 돕기 봉사 활동을 벌여요. 이 워크 캠프에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다양한 사고 전환의 기회 또한 얻게 되는 거죠. 그래서 저희가 이 단체에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기로 최종 결정을 했던 거고요.





uniK : 2월 13일 공연 당일, 관객들은 많이 왔나요? 호응도는 어땠나요?
이대곤 : 티켓 판매량은 140장이었는데 무료 티켓 분까지 포함해 실제 오신 분들은 180명 정도였어요. 공연 장소인 홍대 클럽이 거의 만석이었거든요. 공연의 내용은 즐거운 음악 이벤트를 통해서 한일 청년들의 언어 장벽을 허물고, 뒤이은 2부에서는 한일 청년들간의 대화의 시간을 갖는 형식으로 진행됐어요. 곧이어 2월 20일에는 일본팀의 공연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에 저를 비롯해 한국팀 6명이 출국했어요. 일본팀의 컨셉트는 ‘코리안 카페’라고 해서, 관객들에게 음악과 함께 퓨전 한식을 제공하는 이벤트였어요. 저희 한국팀도 일본 팀 공연 당일 현지 홍보라든가 진행을 도우러 갔었어요. 도쿄의 대표적인 젊은이들의 거리인 오모테산도 거리에서 공연 장소를 알리는 피켓을 들고 서 있었는데, 짧은 시간 동안 거리를 지나가던 많은 일본인들이 행사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더라고요.

uniK : 이대곤 씨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이대곤 : 저는 지난 학기에 복학을 했어요. 군대에 있을 때는 그렇게 학교가 가고 싶더니, 막상 지난 가을에 복학을 하니까, 뭔가 더 재미있는 일을 찾고 싶었어요. 희망청에서 자원 봉사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한일청년 합작회사 프로젝트가 진행된다는 소식을 접했고 신청하게 됐죠. 전 제 삶을 좀 더 즐겁고 재미있게 만들고 싶은 욕심이 강해서 이 프로젝트에 적극 지원하게 됐고요.

uniK : 그런데 어쩌다가 ‘사장’ 직함까지 달게 되셨나요?(웃음) 궁금했어요.
이대곤 : 한국팀 6명 일본팀 6명, 총 12명 모두가 직함을 갖고 있어요. 자신이 지망했던 대로 결정된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어요. 저는 지원 당시부터 사장을 하고 싶었는데, 이 프로젝트에 정말 적극적으로 열의를 다 해 잘해내고 싶다는 이유가 제일 컸어요. 또 다른 이유로는 마케팅 리더, 커뮤니케이션 리더와 같이 어떤 한 부문에 특화된 직위를 갖기 보다 전 분야를 고루 알아가고 싶었어요. 팀원들 각각이 각 분야 리더를 맡고 있지만 랄라피포에서의 사장은 그 모든 분야에 멀티 플레이어처럼 개입하고 의견을 청취하고 필요한 조사를 함께 해나가는 역할이었거든요.



uniK : 랄라피포는 3월 중 프로젝트 마무리에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향후로도 랄라피포가 존속될 여지는 없는 것인가요?
이대곤 : 이번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한 친구도 있고 각자 많은 변화를 겪었어요. 이제는 서로 다른 꿈을 찾아 가야 할 때라고 생각이 들어요. 저 역시도 개인적으로 정말 많은 것을 얻었지만 이걸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어려워요.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요. 정신적으로도 많이 성장할 수 있었던 계기였어요. 또한 좋은 분들을 많이 알게 됐고요. 음악 이벤트 기획에 대해 잘 모르는 학생에 불과했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하면서 얻을 수 있었던 건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uniK : 아직 국민대학교 전자공학부에 재학 중인 학생으로서, 개인적으로 갖고 있는 미래에 대한 꿈이라면 무엇인가요?
이대곤 : 이번에 해보니까, 음악 이벤트 사업이 참 재미있었어요. 저도 나중에 사업을 해보고 싶은데 아무래도 제가 경험한 분야가 사회적 기업이다 보니까 그 쪽으로 관심이 가요.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면서 수익도 내는… 얼마 전 기사를 통해 아프리카에서 휴대용 정수기를 제조하는 사업가 분을 알게 됐는데요. 아프리카의 오염된 물을 빨대가 달린 작은 휴대용 정수기를 담그고 마시면, 그 물이 정수가 돼요. 그런 것이야말로 진정한 대박이죠! 그런 사업이라면 저도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항상 내가 즐겁게 살 수 있는 분야를 찾으려고 하는, 그런 고민을 계속적으로 해나가고 있어요.



[이대곤 랄라피포 사장]
한국대학생IT경영학회 경영총괄팀장(현)
국민대학교 전자공학부 학생회
국민대학교 축구 소모임 KESA
Ralapipo president(전)
UNFIL 평화유지단 5진(전)
국민대학교 전자공학부 부학생회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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