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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우크라이나 사태, 강 건너 불이 아니다/장덕준(국제학부) 교수
평화와 화합의 축제인 동계올림픽의 성화가 꺼지자마자 개최지 소치 인근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에서 전쟁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크레믈이 믿었던 우크라이나의 대통령 야누코비치가 부패와 무능, 친러시아적 행보에 반대하는 시민의 저항에 의해 쫓겨났다. 이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흑해함대가 있는 크림반도에 러시아군을 파견함으로써 우크라이나 과도정부는 물론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국제사회는 2008년 조지아전쟁 이후 또다시 옛 소련 지역에서 전쟁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푸틴의 러시아는 왜 국제사회의 반발을 무릅쓰고 우크라이나 군사 개입을 감행했을까. 그러한 러시아의 선택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우크라이나는 지정학적으로 러시아에게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남쪽으로 국경을 접하고 있으면서 군사적으로도 흑해함대를 끼고 있는 러시아의 전략적 요충지이다.
둘째, 지경학적인 이유이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으로 향하는 러시아 천연가스의 65%가 지나가는 통로이다. 그러므로 모스크바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영향에서 벗어나 유럽에 편입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더 나아가 푸틴은 2015년까지 옛 소련 국가를 참여시켜 유럽연합(EU)에 버금가는 유라시아경제연합을 창설하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빠져나갈 경우 푸틴의 그러한 구상은 물거품이 될 공산이 커진다.
셋째, 러시아 정부는 우크라이나 거주 러시아인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군사 개입을 정당화하고 있다. 문제가 되고 있는 크림반도는 18세기 이래 러시아가 관할했으나 1954년 1월 흐루쇼프가 ‘선물’의 형태로 관할권을 우크라이나에 넘긴 곳이다. 실제로 오늘날 크림자치공화국 인구의 58% 이상이 러시아인이다.
러시아의 군사개입에 대해 미국과 서유럽 각국은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 군병력 투입을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라면서 그러한 행동은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하는 한편 소치 G8(주요 8개국) 정상회의의 취소와 러시아인 비자 발급 취소를 비롯한 제재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이에 대해 푸틴이 크림자치공화국에 러시아군을 투입한 것은 우크라이나 거주 러시아인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라고 응수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서방 측과 러시아 사이의 긴장이 신냉전으로 치닫는 게 아닐까 국제사회는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가 극단적인 대결로 비화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우선 미국은 시리아 문제와 이란의 핵 문제 등 주요 국제 현안을 해결하는 데 러시아의 협조가 필요하다. 또한 워싱턴은 아시아로의 중심축 이동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형편이다. 러시아로서도 국가경제의 근간인 에너지 수출에 타격을 가져올 수 있는 서방과의 정면충돌을 피해야 하는 입장이다.
푸틴이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등 다자간 협의체를 통한 중재안을 수용할 용의가 있음을 언급한 데서 평화적인 문제 해결을 원하는 러시아의 의중을 엿볼 수 있다.
러시아의 당면 목표는 우크라이나가 다만 유럽으로 기울지 않고 러시아와의 협조적인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데 있다. 이에 단기적으로는 사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우크라이나의 과도정부, 미국 등 서방 측, 그리고 러시아가 타협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의 극심한 경제난과 동서로 분열된 지역구도, 이러한 분열상을 둘러싼 러시아와 서방의 개입과 경쟁 등으로 우크라이나의 앞날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형국이다.
열강의 틈바구니에 처해 있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상은 우크라이나와 닮은 점이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통일논의가 급속하게 확산되면서 북한의 변화에 대한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거론되고 있다. 북한의 급변사태 등 통일의 계기가 갑작스럽게 발생할 경우 과연 외세의 손길에서 자유로운 통일이 가능한가. 그렇게 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 바로 이것이 우리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그저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할 수 없는 이유이다.
원문보기 :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4/03/04/20140304004903.html?OutUrl=naver
출처 : 세계일보 기사보도 2014.03.04 22:16